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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북] <기획_문화마주보기> 의미와 재미의 균형을 잡아주는 삶, 문화다양성
이름
전주문화재단
일자
2018-01-16
내용

문화가 다양하다는 건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공동 문화자원 느는것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분량의 삶을 들여다보자. 삶을 이루는 구체적인 활동은 각기 직업이나 취향 그리고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종류의 직업을 가진 노동자인가에 따라서 다르고, 산과 커피숍과 시장으로 다니며 자연과 사람과 쇼핑을 즐기는 취향이 있는 사람과 혼자 있는 정적인 시간을 즐기는 사람의 활동이 다르며, 낮과 밤 시간 혹은 식사 시간대에 따라서 활동의 내용이 일반적으로 구별된다. 물론 최근에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혼합되고, 낮과 밤의 활동이 구별되기 어려운 다각적인 콜라보- 공동작업, 협력-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저러한 활동을 꿈 꿀 틈도 없이 행사 준비로 뛰어다니거나 식당이나 편의점, 혹은 문구점이나 마트에서 상품 판매에 넋이 나갈 정도인 활동도 있다.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줄여가며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그 활동들이 의미와 재미가 전혀 없다면, 그 활동은 자율적으로 선택한 몰입으로서의 노동이나 여가가

아니어서, 추후 그 부작용인 고통이 예견되기도 한다.                                                                                ▲ 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이렇듯 우리 삶을 구성하는 활동의 외양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지향하는 바를 단순화하면, 의미 찾기와 재미 찾기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은 의미와 재미의 두 차원에서 전개된다. 따라서 이 두 차원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면,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히 내적으로 그 편중으로부터 발생한 불균형으로부터 불만이 쌓이고, 그 불만으로 인해 늘 전투태세가 된다.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 인내심을 잃게 되고, 그 불만은 다각적인 분노의 방식으로 표출되어, 조직과 사회의 미래에 부담이 된다. 게다가 의미만 추구한 키다리 아저씨들과 재미만 추구한 한량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외로움은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절대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외롭고 절대적인 분노의 방식이 아니라 타인의 인권과 표현을 존중하는 이해와 관용의 의미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재미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 찾아진다. 문화다양성은 생물의 종 다양성과 동일한 비유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생물의 종 다양성은 생물의 종을 보호하여 멸종을 방지하면 지구상의 생물의 다양성과 풍요를 통해 인류의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게 되는 차원이다. 문화다양성은 단지 다양한 사람들이 지닌 고유한 문화와 그 표현들을 보호만 하면 되는 차원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문화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문화를 즐기는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과업이 따른다.



자신의 문화나 취향과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귀찮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진정한 문화발전을 위한 첫 걸음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와 재미가 타인에 의해 이해되는 일과 동일한 맥락이다. 동전의 앞뒷면인 것이다. 따라서 고립주의적 운동들은 사실상 문화다양성을 배격하는 일종의 폭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문화가 다양하다는 것은 혼란스럽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며, 우리가 소속된 지구상의 인류가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동의 문화자원이 늘어나는 일이다. 나는 과연 우리 고유의 문화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다른 문화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새삼 반성하게 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미와 재미를 균형적으로 추구하고 실천하되 그 의미 속에서 문화다양성의 힘을 실감하고 재미를 느끼게 되기를 소망하는 시간이다.



△정정숙 대표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연구실장, 한국문화기획평가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기고 | desk@jjan.kr / 등록일 :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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