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대중과의 접촉이 쉬워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브랜딩’의 개념이 일상에 파고들고 있다. 예술은 스스로 브랜딩 해내고 있는가? 예술계의 퍼스널 브랜딩 성공 사례는 없는가? 예술가, 브랜딩 그리고 팬(Fan-tie)을 다루는 4호는 ‘예술과 브랜딩 그리고 문화창조자로서의 팬’을 주제로 스토리 브랜딩 서비스 기업 대표, 극장장, 복합문화예술공간의 운영자가 모여 좌담을 진행했다. 플랫폼의 관점으로 브랜딩 방향성,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문화창조자로서의 팬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여, 이에 따른 예술가와 단체, 공간의 자기 브랜딩 방식과 관계 맺기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영균(본지 편집장, 이하 허영균) : 최근 몇 년 간 예술가, 단체, 기관과 관객 혹은 소비자와의 거리가 훨씬 좁혀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 해보고 싶다. 각자 소개로 시작해보자.
김해리(문화기획자, 필로스토리 공동대표, 이하 김해리) : 문화예술 분야에서 독립 문화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해리이다. "필로스토리"라는 스토리 경험 디자인 그룹을 만들어서 운영을 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는 주로 고유한 스토리 자산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정립하는 일을 한다. 그밖에도 프로듀서, 모더레이터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한다.
서상혁(축제행성 대표, 前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하 서상혁) : 기획 일을 하고 있는 서상혁이다. 작년 5월까지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을 공동 운영했었다. 그 경험들을 가지고 오늘 대화에 임할 것 같다.
전진모(연출, 신촌극장 극장장, 이하 전진모) : 연극연출을 하다 신촌극장을 운영한지 5년이 되었다. 브랜딩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여러분들의 얘기를 많이 듣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
왼쪽 첫 번째부터 김해리, 서상혁, 전진모, 허영균
브랜딩이라 불리는 상상과 실천
김해리 : '예술가 브랜딩 그리고 문화 창조자로서의 팬'이라는 주제가 매우 재밌었다.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또 개인 창작자로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 모였기 때문에 다양한 관계망들과 만나보신 경험이 있을 것이다. 먼저 브랜드 또는 홍보 마케팅과 같은 용어들이 시장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데, 이 용어들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체감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공간을 운영하거나 콘텐츠를 알리는 과정에서 브랜딩 또는 마케팅 또는 홍보 이런 단어들에 대해서 어떤 것들을 경험해 왔는지 먼저 들어보겠다.
서상혁 : 공간을 운영하게 되면서 해당 공간을 알리는 전략이 뭘까? 라고 했을 때 의도했던 건 아닌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방향이 도가에서 나오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닮아 있었다. '무위자연'의 뜻을 헤아려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 그러하다.'로 읽을 수도 있는데, 하지 않음으로써 한다는 것은 진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행화탕은 크게 세 가지 방식 -자체 기획, 대관 기획, 공동 기획- 으로 운영이 됐었는데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과 자신만의 관점을 지닌 운영 방식이 어우러져서 저절로 그러할 수 있게 되도록 하는 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었다. 이를 SWOT 분석에 의해 살펴보면, 강점은 더 강하게 약점은 보완하지 않는다는 전략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강점을 더 강하게 하고 약점은 스스로 보완하지 않다보니, 부족한 지점에서는 누군가와 같이 하는 협업구조가 기본 태도가 되었다. 또 행화탕이 지니고 있는 목욕탕이라는 특성을 행화탕만이 지닌 스토리에 바탕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될 수 있는 방편에서 여러 가지 내용과 형식의 콘텐츠를 구상했다.
김해리 : 누군가를 좋아하면 과거도 궁금하고, 현재도 궁금하고, 또 앞으로 결혼까지 상상하는 것처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는 태도들이 행화탕의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 같다. 한편, 신촌극장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해오고 있는데, 어떤 점들이 신촌극장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는가?
전진모 : 신촌극장은 건물 옥탑에 새로 지어올린 신생 공간이라 이전의 기능과 역사가 없다. 대학로 외 지역이기도 하고 크기도 굉장히 작은 편이다. 극장을 상상하기 쉽지 않은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에 극장을 만든다는 건 뭘까? 이 극장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떤 공연들이 올라가게 될까? 이런 고민들을, 딱히 브랜딩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초반에는 “연습실로 써도 되요?”라는 질문이 많이 들어올 정도로 공연을 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신촌극장이 ‘공연을 위한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한계가 가득한 작은 공간일지라도 기꺼이, 즐겁게 채워주실 분들을 찾아 섭외하고 해주십사 부탁드렸다. 이 공간이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관계를 맺어 가는지부터 시작해서, 함께 무엇을 해나가는지 SNS 등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에도 ‘이런 성격’이라고 고집을 좀 부렸던 것 같다.
신촌극장 입구 풍경 Ⓒ신촌극장 제공
신촌극장 내부 Ⓒ신촌극장 제공
인스타그램도 그렇고 페이스북도 그렇고 올라와 있는 콘텐츠가 사실 많지 않다. 창작자, 창작진에 대한 정보와 공연정보 정도 외에 딱히 다른 메시지를 내보일 게 없다. 공연에 대한 정보나 사진이라고 해도, 빈번하게 올리는 것을 지양하는 편이다. 극장에 대해서는, 수다스럽게 말하기보다 그냥 이런 공간, 이런 성격 정도를 전달하는 선에서 멈추려 하는 편이다.
김해리 : 브랜딩이 뭐냐, 홍보가 뭐냐, 마케팅이란 뭐냐를 직업적으로 많이 고민한다. 홍보, 마케팅, 브랜딩의 개념을 무 자르듯이 딱 나눌 수는 없지만 홍보는 대중적으로 알리고 인지시키는 일, 마케팅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구매 등의 실질적인 행동으로 연결하는 일, 브랜딩은 어떤 존재의 고유한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행화탕과 신촌극장이 모두 마치 사람의 인격을 설정하는 것처럼 공간을 캐릭터로 인지하고 그 정체성을 고집스럽게 지켰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들으면서 궁금해졌던 건 처음부터 물론 머리에 그린 그림은 있더라도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해해 주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 않나. 계속해서 어떤 콘텐츠들도 발신을 해야 되고. 나의 경우 1~2년이 지나고 나니 우리가 어느 정도의 브랜드가 된 것 같다, 사람들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인지하는구나 깨닫게 되는 순간이 왔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떠한가?
서상혁 : 행화커피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같이 운영했다. 행화탕이 문을 열고 1년 2개월 후에 시작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한 까닭이었다. 카페가 생기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행화탕에 상주하면서 운영을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카페를 통해 동네 주민들이 좀 더 머무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곳을 공연장이나 전시장 등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단순히 카페로 이용하는 사람도 생겼다. 카페를 겸하고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의 특성상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동기에 따라 각자 느끼는 것이 달랐다.
행화커피 시그니처 메뉴(촬영 : Chad Park) Ⓒ축제행성 제공
아까도 이야기한 것처럼 행화탕을 한 명의 인격체라고 설정해 두고 운영했다. 1958년 지어진 행화탕의 2018년 환갑을 기념해 행화환갑 프로젝트를 했다. 3명의 디자이너들과 협력해 환갑을 기념한 목욕 굿즈를 만들거나, 행화탕의 리서치 대상으로 두고 사진, 연극, 음악 분야의 각 예술가들을 섭외해서 이야기를 발굴하고 각자만의 관점에 따른 창작 작업을 하기도 했다. 행화탕이 위치한 지역이 재개발 예정지라는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 하에 작년에는 실제 퇴거 일자가 통보되면서, 공간도 인간처럼 장례를 치른다는 관점과 태도 하에 ‘행화장례 삼일장’을 통해 행화탕과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했다. 2016년 5월부터 2021년 5월까지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서 행화탕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각자만의 다양한 경험들로 추억되는 듯 싶다. 예술공간 지형의 측면에서는 공간을 사용한 에술인 또는 공간 내 어우러진 저마다의 예술을 감각하는 예술인과 시민 등의 입소문 및 sns 등을 통해 한 번쯤은 작업해보고픈 공간 자체의 매력 등이 알려진 듯 싶다. 그리고 창작자 간 ‘행화탕’을 언급할 때면, ‘어! 행화탕에서 작업하세요?’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도 꽤 흥미로웠다. 자체 홍보 활동은 빈약했지만, 유휴공간의 활용 사례 및 이색적 경험 공간 등의 다양한 키워드로 언론과 방송, 매거진 등 대중매체에 노출되거나, 여러 예술인들이 행화탕에서 실험하는 예술 활동들이 축적되면서 조금씩 알려지다 보니, 3년 이후에는 가본 적이 없어도 이름은 들어본 공간 정도가 된 것 같았다.
김해리 : 인간의 통과의례를 따라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특히 마지막에는 장례식을 치뤘다. 브랜딩을 하는 사람으로 보자면 섬세한 브랜드 경험으로 읽게 되는 작업들이다. 브랜딩 전략을 세우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행화탕은 그 자체로 5년짜리 공연은 아니었나 싶다. 신촌극장은 어떠한가?
전진모 : 특히나 신진 창작자들이 공연하고 싶어하는 공간이라는 피드백을 들었다. 통과의례처럼 거쳐가야 하는 공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위험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멈칫하는 마음이 생긴다.
신촌극장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느끼기 시작한 것은 2~3년차에 이르렀을 때다.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행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도 중요하다. 공간은 사용하지 않으면 그저 빈 깡통에 지나지 않고, 다만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곧 그 행적이자 정체성이 된다. 그렇기에 아티스트와의 관계가 중요하고, 그들과 함께 만든 공연 이력을 통해서야, 비로소 신촌극장이 어떤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다.
이용자, 관객 또는 팬과의 관계 맺기
김해리 : 오늘 좌담의 또 다른 키워드인 팬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관객, 창작자 등 어떤 관계망들을 형성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관계 맺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으로 브랜드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각각 어떤 사람들과 교류했는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
서상혁 : 작년 5월에 공간 장례식인 ‘행화장례’라는 행사를 치렀다. 5월 24일 퇴거 일자에 맞추어 5월 20일부터 삼일장으로 진행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 동안, 행화탕 모든 공간을 염하듯 깨끗하게 비워놓았고, 죽음 이후의 의레에서 시점을 죽음 이전으로 옮겨오면서 축제가 지닌 제의성뿐만 아니라 ‘행화탕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기억합니다’라는 모토로 축의성도 담아내려고 했다. 그간 행화탕을 많이 이용했고, 긴밀한 경험을 맺은 창작자, 기획자 등 애정하는 사람들을 공동상주로 하여 3일간 시간대별로 함께 공간을 지켰다. 행화장례를 통해 예상치 못한 경험을 몇 가지 했는데, 3일간 약 일천 명 정도의 방문 중에 절반 정도는 행화탕을 처음 와보는 사람들이었다. 조의금은 선택이었는데 스스로 결정하여 조의금도 전하며 조의를 표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처음 오시는데 왜 조의를 하냐고 궁금하여 물었더니 전반적으로 행화탕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행화탕을 통해 자기 일상 속에서 뭔가 잊히고 사라지는, 한 번은 가봐야지 싶었던 공간들을 떠올리면서 행화탕에 감정을 투영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장소성이란 관점에서 행화탕은 각자의 경험들이 다양한 층위로 쌓이기 때문에, 공간이 사람들마다 각양각색의 스펙트럼으로 빛나는 장소로 기억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행화장례 삼일장(촬영 : Chad Park) Ⓒ축제행성 제공
김해리 : 특정한 가치 혹은 감정을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있을 때 커뮤니티가 강력해지는 것 같다. 행화장례 3일 동안 동료들이 상주로 설 수 있었던 것도 비슷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한편 행화탕 디렉터인 서상혁이 곧 행화탕의 브랜드이기도 했던 것 같다. 한편 신촌극장은 분명히 ‘팬’이 있다고 느껴지는 공간이다. 어떤 분들로부터 팬덤이 형성되었는지 그들의 반응과 그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 궁금했다.
전진모 : 극장의 인격을 채워나가는 것은 예술가와 그들의 공연(콘텐츠)이다. 그러므로 극장의 첫번째 관계맺음은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객이 오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인격이 채워지고 나면 그제야 일종의 사회적 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초반에는 연극은 연극, 무용은 무용, 전시면 전시만을 위해 공간을 찾는 방식으로 이용객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 벽이 허물어져서 이 극장에 가면 어떤 공연을 만날 거라는 기대로 찾아주는 이들이 늘어난 것 같다.
관계를 맺어가는 것은 늘 반갑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커뮤니티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혼자 만든 공간도 아니며, 나를 위해 사적으로 구상된 극장도 아니기 때문에 누구의 것이 되는 현상을 만들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친한 창작자들이 생기고 여러 차례 극장을 이용하는 작업자들이 생기지만, 극장을 매개로 결속력을 다지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관객하고도 마찬가지다. 물론 감사한 일이겠지만. 어떻게 존재감을 가질까/보일까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나에겐 중요하다. 작품들로 채워져 가야하는 극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해리 : 공간 또는 브랜드와 나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 사람들과도 너무 끈끈하게 이어지지 않는 것이 신촌극장의 특징인 것 같다. 사실 모든 브랜드가 커뮤니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고유한 존재가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신촌극장이 문화예술계 안에서 특정한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문화예술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전진모 : 신촌극장을 운영하면서 중요한 다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는 것이다. 절대 내 범주를 넘어서는 일을 하고 싶지 않고, 내가 만일 이 공간을 기점으로 뭔가를 한다고 생각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일이 투여되는 것을 지양하고 싶다. 나로서도 극장으로서도 건강하지 않은 방식인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지원금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제작비를 지원하는 극장은 아니지만, 그런 원칙 내지는 지향점을 세움으로써 다양한 작가들이 다양한 작업을 위해 찾는 극장이 되고 싶었다. 소비층이 생기는 것과 별개로 이 공간을 소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허영균 : 팬덤이라는 말이 거대할 수 있지만, 신촌극장은 분명히 팬을 가진 극장이다. 이상적인 극장, 선호하는 극장을 이야기 할 때 아티스트들의 입을 통해 신촌극장이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스스럼없이 신촌극장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극장 자체를 동료로 느낀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편 관람객에게는 신촌극장의 큐레이션에 대한 신뢰도 있는 것 같다.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의 관점을 떠나서 브랜드를 소비한다는 것은 취향의 공동체로서, 무형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그 브랜드를 인지하고 소비하고 소유함으로서 그 브랜드와 문화에 참여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와는 다른 관점에서 신촌극장를 하나의 브랜드로 이해한다. 두 분을 대조적 의미로 초대한 건 아닌데, 오늘 대화를 통해 신촌극장이 미니멀리즘에 가깝다면 행화탕은 맥시멀리즘에 가깝다고 느끼게 됐다. 한편 모더레이터이신 해리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듣고 싶다. 현재 브랜딩과 관련하여 가장 가까이 계신 분이라 생각한다.
김해리 : 나는 기획자로서 문화예술계에서 일을 했다. 창작자나 예술가의 작품을 서포트하는 개념으로 협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라는 사람의 의미나 내 고유성에 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 점이 힘들게 느껴졌던 시기가 있었다. 홍보회사로 이직해서 일을 하기도 했고, 다시 돌아와 지금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영역을 오가며 활동한 일 경험을 예술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나’를 하나의 브랜드로 바라보게 됐다. 이 이야기를 논문으로 남기는 것 외에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썼다. 예술을 너무 좋아하면서도, 이게 내 일이 맞는지 고민하며 나만의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이 책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큰 반응을 얻었다. 전진모 극장장님이 지금은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시대’라는 이야길 했는데 진심으로 공감한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 사람들과 연결되는 경험이 나에게도 영감이 되었다.
책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김해리 제공
그런 관점에서 문화예술계의 브랜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브랜드가 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양한 이야기에 대한 시대적인 요청이라고도 본다. 문화예술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듯, 일을 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방향적으로 콘텐츠를 제공받는 형태가 아닌, 각각의 개인들이 동등하게 콘텐츠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의 팬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사람도 또 한 명의 창작자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창작자가 되는 흐름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브랜딩이 아니어도 좋은 방향성
허영균 : 서상혁 대표님은 행화탕이라는 큰 공간, 큰 시간,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이제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이자 연출자 서상혁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 같다. 행화탕 = 서상혁이라는 브랜드가 컸기 때문에 행화탕에서 소급해내던 아이디어와 개인의 프로젝트들을 앞으로는 어떻게 풀어내고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서상혁 : 무엇을 하게 될 때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태어났고 나는 한국인이고 남성이라는 정체성으로 학습했고 또 한국인 문화를 익혀왔다. 자각 이전에 이미 보편적으로 구분되는 범주에 놓여 있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행화탕이라는 공간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발견들이 행화탕이라는 공간의 특성과 만나면서 좀 더 나다운 나를 찾아가며 행화탕의 활동에 투영되었다고 생각한다. 행화탕에서 했던 프로젝트들은 공간에 발길을 하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과 조금씩 발견되는 공간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이며 결국 나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여정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발견하고 표현해왔던 강점들을 강하게 하되 약점은 보완하지 않기에 다른 누군가와 협력한다는 방침은 이어갈 것이다. 내가 못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만나야 함께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가장 동시대답다고 하는 건 가장 자기다운 걸 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여러 경험 속에 빚어진 가치관이 반영되어 점차 선명해질수록 누군가에게 인식되기 쉬운 일종의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행화탕이라는 브랜드는 어쩌면, 복합적인 활동 속에서 각자에게 인식될 때, 단순하고 간결하게 접근될 수 있었던 각각의 고유한 가치가 독립적으로 어우러져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허영균 : 전진모 극장장님께도 여쭤본다. 올해 신촌극장이 5주년을 맞이한다. 5주년이라고 뭔가 특별한 걸 하겠다는 의지가 없음을 오늘 좌담을 통해 엿봤다. (웃음) 그럼에도 올해 되짚어 보는 신촌극장의 색깔이나 기준에 관해서 간단히 정리하는 말씀 해주시면 좋겠다. 나 또한 한 사람의 팬으로서 신촌극장에 가면 기성 작가의 새로움이나 낯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전해드리고 싶기도 하다.
전진모 : 극장을 만들었을 때 3년을 버티면 시작이다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3년이 흐르니 5년을 버텨야 앞으로가 있다고 말하더라. 사람은 살아가면서 완고해지고, 고집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어떤 걸 유지하고 어떤 걸 버릴 것이냐를 잘 선택해야 가능한 일이다. 신촌극장도 변화해야 할 것과 유지할 것을 분명하고 구체적인 고민을 해야할 시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어떤 것들은 머릿속에 품고도 잘 안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김해리 : 오늘 자리를 마무리 해보겠다. 브랜딩에 관해 다들 잘 모르신다고 했지만 모든 말씀이 결국 브랜딩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를 명확하게 알고,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브랜드 혹은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 유지할 것과 변화할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고, 없는지 판단하며 나아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브랜딩의 정의와 굉장히 닮아있었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허영균 : 중요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하다. 문화예술계의 브랜드 경향성 같은 거대한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로(0)에서 현재까지 공간, 플랫폼, 이름을 키워온 분들의 이야기여서 더욱 값졌다.
서상혁은 2005년 축제 분야에서 ‘기획’을 처음 경험했다. 2014년 분야와 장르의 경계 없이 ‘자기 기획’을 통해 삶을 주체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소재와 형식으로 ‘후즈 페스티벌(Whose Festival)’을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6년부터 ‘기획과 연출의 경계’를 서성이다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머시브 시어터’ 창작 활동에서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이에 새로운 유형의 예술 창작을 탐구하고 시도하는 ‘후즈살롱’의 대표(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이자 창작자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을 운영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역할 했고, 행화장례 삼일장 이후 현재 나름의 방식으로 삼년상을 치르고 있다. 문화예술콘텐츠랩 축제행성의 대표(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며, ‘지구에 소풍 온 우주 보헤미안’이라는 관점으로 살아가고 있다.
[페이스북] @astrobohemian
전진모는 연출가이자 신촌극장 극장장이다. 가끔 쓰고 연출하는 가운데 소재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보다 유연한 표현과 발화의 방식들을 찾고 있다.
신촌극장(2017년 6월 개관)은 물리적인 한계와 제약이 가득한 작은 옥탑 공간이다. 다만 장르 불문의 공연예술이 함의하는 다채롭고 진취적인 자기표현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을 목표하며, 매년 작가(창작자) 중심으로 꾸려진 라인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촌극장 이메일] theatre.sinchon@gmail.com
[신촌극장 인스타그램] @theatresinchon
김해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한 후, 예술을 중심으로 경계를 넘나들며 기획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빛나는 이야기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스토리 경험 디자인 그룹 필로스토리를 공동창업해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기획자, 독립예술 프로듀서, 동양가배관 브랜드 디렉터, 밑미 리추얼메이커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일한다.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나다운 일을 질문하는 책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를 출판한 후, 사람들의 일과 삶에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일,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인스타그램] @walkandclip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