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고 판화 새기며 정직한 노동을 추구한 판화가, 지용출
세상 어느 누군들 미련과 애틋함 없이 떠나보낼 수 있겠냐만 그와의 이별은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계속 남는다. 짧고도 강렬하게, 그가 남긴 발걸음이 컸기에 더욱 황망하다.
1. 사회변혁운동 작가로서의 형성 배경: 1980년대 미술판
“예술가는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실해야 합니다.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작가가 예술작품을 통해 미적인 아름다움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회참여를 해야 하는 거예요. 예술가들이 무조건 자기만족을 위해서 ‘유희성’을 추구하다 보면 ‘나 홀로 예술’이 될 수 있어요. 예술이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관심을 갖고, 또 참여할 때 사회와 문화의 질이 한 단계 올라 갈 수 있거든요. 결국 대중에 대한,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작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이죠.”
- 전북일보, 2008.11.3.
지용출(池龍出, 1963~2010)은 ‘사회변혁운동’, 즉 민중문화운동이 뜨거웠던 198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비록 그가 6수 끝에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던 1980년대 후반은 그 힘이 예전 같지 않았지만, 여전히 민중문화운동은 그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다.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세력은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제5공화국을 건설했다. 그들은 군사쿠데타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내고 국민적 합의와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집권 초기부터 과감한 문화정책을 펼쳐나갔지만, 민간에서는 군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민중의식으로 무장하고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민중문화운동을 일으켰다. 다시 말해 1980년대 대학생들과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군사정권의 모순과 불합리성에 대항하기 위해 사회주의 이념이 급격히 파급되어 있었고, 이에 미술가들도 마르크스주의에 근간을 두는 사회과학 학문을 현실 변혁을 위한 투쟁적 정신과 실천 강령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의 목표는 민중 정신의 숭고한 가치를 환기하고 전두환 군사정권을 타도해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었다. 여기에 미술은 시각적 장르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일반 대중에게 민중주의, 민중의식, 민중성을 전달하며 깊숙이 동참했다. 즉 민중문화운동은 군사정권에 반대하던 교수, 학자, 연구원, 지식인들을 통해 촉발되었지만, 이것을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시킨 사람들은 대학생들과 예술인들이었다.
한편 (대학 시절의 작품들을 제외하고) 1994년부터 1998년까지가 작가로서 지용출의 첫 번째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그는 미술계에 ‘지용출’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킬 인상 깊은 작품들을 생산해 냈다. 이 시기 작가는 1997년 제1회 개인전(서울 나무갤러리)을 시작으로 1998년 2회(전주 서신갤러리), 3회(전주 미주치과)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회 전시에서 그는 효자동 개발지구 시리즈(도판8·9)를 통해 도시개발이 낳은 삭막한 풍경이나 〈정미소〉(1996)(도판 10)에서처럼 오랜 기간 자연에 방치되면서 폐허로 변해가는 건물들을 보여주었다. 이에 혹자는 이 시기를 민중미술 운동에 열정을 쏟았던 그의 현실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함을 물론, 환경에 대한 성찰과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언급했다.
반면 1998년 연이은 2, 3회 개인전에서는 〈갯벌〉(1996)(도판11), 〈새만금에서〉(1997) 등을 통해 비릿한 바다 내음을 품은 부안의 자연 풍경과 그곳 어민들의 노동 일상, 그리고 그 일상에서 흔하게 존재하여 의미 없어 보이기까지 한 소박한 소재로서 작은 생물들, 풀꽃들, 곤충들, 말라비틀어진 무청 등을 표현했다.(도판12) 이들은 놀랍게도 거의 같은 시기에 동시적으로 제작된 상이한 것들의 충돌이었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에서 공통점이 없는 다양한 소재는 사뭇 1회 전시에서 보여준 현실 비판적 시각과 전혀 다른 자연 친화적이고 감상적인 성향으로까지 여겨지며 의아하게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에게 야생 꽃과
그러나 연이어 개최된 다음 전시에서 이영욱은 지용출의 작품 생성 과정에서의 솔직함과 투명성, 그리고 일상적 소재에서 오는 소박함 등을 주목하며 “이런 느낌은 우리를 작품 안으로 열어주며, 참여할 수 있게한다. 작은 공감, 지용출의 이번 작업들은 이런 공감을 가능케 한다. (중략)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대상으로 한 것들… (중략) 그 일상성 속에서 엉뚱하게도 새롭다. 상투적인 소재 선택이나 표현법을 벗어나 어떤 진솔한 만남의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가능한 새로움, 하긴 이 새로움들은 한편으로 소박하기 그지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온갖 관례들과 불필요한 지식들이 몸에 새겨져 스스로의 언어를 찾지 못하는 혼돈과 불투명함에 길을 열어주는 것은 이러한 소박함 아닐까?”(이영욱, 1998년 서신갤러리 서문)라고 언급하며 다행히 그의 선회한 사회참여 의식을 눈치챈 듯하다.
“자연은 우리에게 항상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전달한다.
사람 들이 항상 변화한다고 하는 것은 그 마음이 변하는 것이지 자 연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사회의 이상향도 무위의 소박 함이 아닐까….”
- 문화저널, 2006년 4월호
그 무렵 지용출은 철학과로 진학해 박사과정을 이수하던 때였다. ⑹ 이는 실제 그 자신이 진정으로 체험한 자연과 시골 생활의 정겨움, 그리고 호사롭지 않지만 넘치는 술 한잔을 기분 좋게 건네는 우리 민족적 정서에 동양철학을 입히는 순간이었다. (도판 20) 즉 지용출에게 “흑백 목판화는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이고, 현상을 넘어 정신세계마저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흑백 목판화가 주는 절제되고 소박한 표현은 아마도 유교의 세계관을 그림으로 표현한 사대부 문인화의 미의식이며 정신세계를 계승한 것”(고충환, 2020년 작고 10주기 기념전 서문)으로 여겨졌다.
특히 그는 2003년 전주역사박물관의 의뢰를 받고 전주 고지도 목판을 재현하는 작업과 함께, 민미협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2002년 전주 월드컵 기념으로 전주 종합경기장 일대에 시행된 전주역사그리기 공공미술(벽화) 프로젝트, 같은 해 전주 신흥고 담장 벽화 〈가마귀골의 역사, 전주의 풍물〉과 같은 전주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의 책임자로서 활동하게 된다.
사실 그는 서울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오래전부터 특별하게 전주 역사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지용출에게 전주 역사를 연구하는 경험은 그의 다음 시리즈인 옛 지도의 작품들을 탄생하게 했다.
지용출은 옛 지도 작업을 위해 조선의 지리학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1861)를 연구했다. 목판으로 제작된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당대 각종 지도와 지리서를 종합하고 집대성하여 완성한 조선 시대 지도학이다. 김정호는 이를 만들기 위해 팔도를 세 번 돌고, 백두산을 여덟 번이나 올랐다고 전해지며, 전통적인 지도 제작법을 따르면서도 확대와 축소를 할 때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가미해 정확성을 높였다. 반면 지용출은 최대한 옛 지도의 전통적 제작법에 근거한 현대판 지도를 제작하고 싶었다. 그는 부감법의 다각적인 시각을 위해 산기슭을 따라 주변의 모든 봉우리를 오르고, 때로는 길이 없는 숲을 헤치고 나가 전주 완산칠봉 및 오목대, 동고사, 남고산성 그리고 전주천 한벽당 등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수수 백년의 세월을 버텨낸 뿌리 깊은 나무들, 거친 등걸마다 치켜든 가지마다 서리서리 시간과 사연을 품고 있는 나무들.
칼맛과 흑백 대비가 두드러지는 고목이나 당산나무들은 집요하고도 묵직한 힘을 내뿜으며 순탄치 않았을 역정과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를 이야기한다. (중략) 그런가 하면 지난 2007년 우진문화공간에서 열렸던 전시명인 ‘곁에 있는 나무’처럼, 곁이라는 말의 따뜻함과 이무로움이 먼저 또 와닿는 나무들도 있다. 마을과 사람과 더불어 다순 숨결을 나누고 있는 나무들.
또 어느 나무에선 바람을 보고 바람소리를 듣는다. 무게와 힘을 덜고 바람과 몸을 섞고 있는 잎, 잎, 잎…. 채움 대신 비움으로, 그래서 바람이 스며들었다. 그 바람이 마음을 고요히 쓸고 간다.”
- 판화사랑, 네이버 개인 블로그
6. 남은 사람들: 유작전, ‘건실하고 해맑은 청년’ 그를 회고함
지난 2011년 5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는 지용출의 사망 1주기를 기념한 ‘故 지용출 판화유작전’이 열렸다. 지용출의 동료와 지인들은 유작전 준비를 위해 기꺼이 힘을 보탰고, 특히 전시 기획과 전체 진행을 맡은 유대수는 몇몇 작가들과 함께 작품을 사후 재현(Reproduction)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글을 통해 그를 추모했다.
채우승은 지용출과 ‘작업실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통해 교류했다. 그는 지용출을 떠나보낸 이후에도 여전히 ‘건실하고 해맑은 청년’으로 그를 기억했다. 이는 생김새가 청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지용출에 대한 인상 때문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채우승뿐만 아니라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용출의 영원한 인상일 것이다.
그리고 지용출의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기간 그를 지켜본 아내 김미경은 그를 흡사 바위와 수도승 같았다고 회고했다. 남편은 스케치를 마치고 판 앞에 서서 파 내려갈 때 칼 잡은 손만 움직일 뿐 바위처럼 미동도 없었고, 깊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시간을 잊고, 오로지 묵묵히 판을 파 내려가는 모습이 흡사 수도승 같았다는 것이다.
또 지용출과 민중미술운동의 연으로, 타향 전주에서 만난 동향 선후배로, 평론가와 작가로, 혹은 지인으로 교우 관계를 맺었다는 이영욱은 그가 무엇보다도 판화가였음을 강조했다. 그는 “지용출의 일상적 자세와 성격이 판화의 공정이 요구되는 미덕과 닮아 있었음을 느꼈고, 그의 단호한 성실함과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차분함,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 일관된 평화가 그렇고, 일과 삶을 일치시켜 나갔던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라고 술회했다.
이후에도 유작전은 매번 추모의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특히 유작전은 유족에게 전북대학교와 전북도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는 계기도 마련하였다. 이에 2020년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개최된 작고 10주년 전시는 지난 2013년 지역의 미술 애호가 단체인 전북미술관회가 작가의 판화 기증작 63점과 소장작 3점을 더한 총 66점의 소장 판화로 전시하였는데, 이는 사실상 작가의 전작을 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이 되었다.
“판화만을 고집해 온 작가, 판화가라는 말이 그 누구보다 어울렸던 작가 지용출”
- 전북일보, 2010.5.19.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어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그를 잊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와 남겨진 그의 작품들은 작품 속 시적인 풍경으로, 우리 곁에서 불멸의 영생을 지속하고 있다.
1) 미술계에서 처음 1980년대 민중미술의 근원적 토대가 되었던 것은 박정희의 삼선개헌에 반대하며 1969년 창립된 '현실동인'이었다. '현실동인'은 당시 저항문학운동을 하던 김지하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다니던 오윤, 오경환, 임세택 등과 함께 창립한 단체였다. 그들은 선언문을 작성하고 창립전을 준비했지만, 지도교수와 가족들의 만류로 창립전을 포기하고 해체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현실참여 미술운동의 방향을 구체화화였고, 이를 다시 10년이 지나 1979년 10·26사태 이후 혼돈의 정치적 현실에 대응하고자 미술 이론가들과 함께 '현실과 발언'으로 새롭게 창립하게 된다.
2) 이후 지용출은 전북판화가협회에서 2001년 2월 회장으로 취임하여 2006년까지 역임하였다.
3) 지용출은 2001년 전북민미협 회장에 취임하여 2007년까지 6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4) 지용출은 1994년 9월 결혼하면서 살림집 근처 전주 효자동 융성아파트 지하에 개인 작업실을 차렸다. 그러다 1995년 8월부터 1997년 3월까지 유대수와 함께 효자동 태백주택 지하에 공동작업실을 운영한다.
그 이후 지용출은 가족과 김제에 터를 잡고 김제 용지면 농가 창고에서 작업하다가, 2000년 그의 마지막 작업실이 된 김제 금구 선암리 싸리골에 작업실을 짓는다.
5) 전시는 2001년9월5일부터 9월17일까지 개최되었다. 같은 해 12월 지용출은 제9회 전북청년미술상을 수상하고, 2002년 전주 '얼화랑'에서 청년작가수상전을 기념한 제5회 개인전을 개최했다.
6) 그는 2006년 8월에 전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7) 목판에 먹이나 동양화 물감을 써서 회화 같은 효과를 내는 중국 전통 판화 기법.
8) 2009년 지용출은 전라북도에서 발행한 홍보 책자의 작품들을 모아 최명희문학관에서 소리여행 시리즈를 전시하였다. 그게 그의 마지막 11회 개인전이 되었다.
참고문헌
전북민족미술인협회, 『故 지용출 판화유작전, 곁에 있는 나무』, 한국소리문화의전당, 2011
고영재, 『故 지용출 판화유작전, 흙의 속뜰에서 피다』, 롯데갤러리, 광주, 2012
김은영, 『지용출 판화: 당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생의 의지』, 전북도립미술관, 전주, 2020
전주문화재단, 『전북판화 30년 다시, 판화』, 팔복예술공장, 전주, 2022
김현화, 『민중미술』, 한길사, 2021
성완경, 『민중미술 모더니즘 시각문화』, 열화당, 1999
정상곤 엮음, 『한국현대판화의 담론과 현장 1958-2008』, 한국현대판화가협회, 2007
민족미술인협의회, 『민족미술』, 민족미술인협의회, 1993년 8월호
도휘정, 「교통사고로 숨진 판화가 지용출씨, 그의 작품세계는…」, 『전북일보』, 2010.5.19.
--------, 「판화가 지용출 “시적인 느낌을 찾는 것 목판화 매력이죠”」, 『전북일보』, 2008.6.1.
정 훈, 「판화가 지용출씨, 조각칼로 새긴 ‘과거의 흔적’」, 『전북일보』, 2008.11.3.
이상조, 「오래된 나무, 작은 풀섶들의 이야기」, 『문화저널』, 2001년 10월호
김회경, 「작은 풀섶들에도 ‘아름다움’이 있다-판화가 지용출」, 『문화저널』, 2003년 2월호
문화저널 편집부, 「아! 거기 늘 어머니 같은 강물이 있었지」, 『문화저널』, 2004년 12월호
지용출, 「강 길은 지금도 아름답다」, 『문화저널』, 2004년 12월호
--------, 「지용출의 판화 이야기」, 『문화저널』, 2006년 4월호
--------, 「지용출의 판화 이야기」, 『문화저널』, 2006년 6월호
--------, 「농사는 예술, 나는 행복한 텃밭을 가꾼다」, 『문화저널』, 2010년 3월호
곁에있는나무-지용출갤러리 https://blog.naver.com/gema45
판화카페대수공방 https://printstudio86.tistory.com/
판화사랑 https://blog.naver.com/printart
유족 김미경 인터뷰 2023.9.15.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전주역사박물관, 한국수자원공사, 전라북도청사, 전주시
<지도 그림 제작> 만경강생태문화지도, 최명희문학지도, 익산생태문화지도, 남고산성지도, 전주생태문화
지도, 완산칠봉지도, 임실생태문화지도, 김제마을지도, 『전북의 재발견』 소리지도, 삼천마을지도 등
지용출(池龍出, 1963∼2010)
1963. 3. 2. 충북 괴산 출생 (5세 때 서울 중곡동으로 이사)
1983. 서울 성동기계공고 졸업
1989. 3.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 입학(1992년 추계예술대학교 총학생회장 역임)
1993. 2. 추계예술대학교 졸업.
2001. 2.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석사취득(학위논문: 케테콜비츠 판화에 대한 고찰)
2006. 8. 전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3. 서울민미협 가입
또 다른 출발전, 그림마당 민, 서울
추계 애오개 동문전, 덕원미술관, 서울
1994. 3. 아내 김미경의 변산중학교 부임으로 전주 생활 시작
전북판화가협회 가입
1994. 9. 지용출·유대수 판화 2인전, 김성연아트홀, 전주
1995. 전북민미협 창립전 〈황토의 역사〉, 전북예술회관, 전주
전국민족미술인연합 창립전, 문예진흥원미술관, 서울
해방 50년 역사전, 예술의전당, 서울
동학 101주년 기념전 〈흐르는 물, 피는 꽃, 서는 땅〉, 전북예술회관, 전주
광주통일미술제, 망월동, 광주
1996. 12. 전북청년작가위상전, 전북예술회관, 전주
조국의 산하전 〈강〉,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7. 3. 제1회 개인전, 나무갤러리, 서울
1998. 3. 제2회 개인전, 서신갤러리, 전주
제3회 개인전, 미주치과, 전주
제11회 JAAIA전, 동경도미술관, 일본
1999. 아! 대한민국전, 갤리리상, 서울
영호남미술교류전 〈동서에서 남북으로〉, 광주, 목포, 울산
2000. 2. 전북민미협 회장 취임(2007년까지 연임), 김제 금구 선암리에 작업실 지음
통일음악회 무대미술 설치, 삼성문화회관, 전주
2001. 2. 전북판화가협회 회장 취임(2006까지 연임)
전북대학교 석사취득이후 전북대, 정인대, 우석대, 예원대 출강
2001. 12. 전북청년미술상 수상
제4회 개인전, 서신갤러리, 전주
2002. 전북청년미술상 수상작가 그룹 〈4+7〉 활동 시작
제5회 개인전 / 청년작가수상전, 얼화랑, 전주
제6회 개인전 / 마니프전, 예술의전당, 서울
전주역사그리기전, 종합경기장 일원, 전주
2003. 제35회 전라북도미술대전 판화분과 심사위원
2004. 제7회 개인전 / 전북아트페어,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주
제8회 개인전 〈완산을 보다〉, 전주역사박물관, 전주
2005. 3. 김제 금구에 땅을 얻어 농사짓기 시작
전북민예총 주관 제2회 민족예술제 〈쌀전〉, 전라북도 구청사, 전주
문화의 달 행사 〈미술로 보는 판소리 다섯바탕전〉, 경기전·전주역사박물관, 전주
2006. 제9회 개인전 〈樹〉, 문화공간 지담, 전주
2007. 제10회 개인전 〈곁에 있는 나무〉, 우진문화재단, 전주
2008. 지역문화정책연구소 (사)문화연구창 이사 및 운영위원 활동
전라북도 홍보 책자 『전북의 재발견』 시리즈, ‘소리’ 편 일러스트 제작
전라북도 문화예술지원사업 평가위원
2009. 전라북도 홍보 책자 『전북의 재발견』 시리즈, ‘쌀·길’ 편 일러스트 제작
전북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 선임
제11회 개인전(소리여행 시리즈), 최명희문학관, 미나리갤러리, 전주
2010. 5. 18. 새로 마련한 농지를 살피러 가던 중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함
2011. 5. 사망 1주기, 故 지용출 판화 유작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주
2012. 2. 지용출 유작전 〈흙의 속뜰에서 피다〉 롯데갤러리, 광주
2014. 5. 故 지용출 판화 유작전 〈바람소리〉, 전북도립미술관, 서울
2020. 7. 사망 10주기, 지용출 판화전: 당신이 잠시 잊고 있었던 생의 의지, 전북도립미술관, 전주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전주역사박물관, 한국수자원공사, 전라북도청사, 전주시
지도 그림 제작
만경강생태문화지도, 최명희문학지도, 익산생태문화지도, 남고산성지도, 전주생태문화지도, 완산칠봉지도, 임실생태문화지도, 김제마을지도, 『전북의 재발견』 소리지도, 삼천마을지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