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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NFT, 가상현실 속 예술 인터뷰
  • 2021-08-17 13:49
  • 조회 304
인터뷰이 : 신기헌(미디어 아티스트), 인터뷰어 : 김선영(전북대학교 과학학과 교수)
제1호 활성화_2021년 8월

본문 내용

메타버스와 NFT는 말 그대로 현재 매우 핫하다. 유튜브나 TV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이것들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어야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타버스와 NFT를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이나 비즈니스 모델로만 보고 접근을 한다. 이는 예술 영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작가 비플Beeple이 자신의 작품 <매일Everydays>을 NFT를 이용하여 얼마에 팔았다거나 NFT를 이용한 가상 고양이 <크립토키티>가 얼마에 거래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메타버스와 NFT가 가진 기술적 의의와 진정한 가능성을 묻어버리고 있다. 신기헌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예술가의 관점에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그리고 테크놀로지스트의 관점에서 본 메타버스와 NFT의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경제적 잠재력과 가치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 규정하지 않기 위해 여러 명칭을 사용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의 강연에서는 자신을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라고 소개하셨던데요, 이 명칭에는 어떤 함의가 포함되어 있을까요?

 

원래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는 광고업계에서 사용하는 직함으로 크리에이티브와 테크놀로지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직함이나 명칭은 내가 나를 정의한다기보다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일정 부분 제가 의도하는 것인데, 십이 년 정도 이렇게 살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명칭이 굉장히 많이 모였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실험인데, 가장 친한 몇몇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들 각자가 서로 달리 신기헌에 대해 말하면서 싸우는 장면을 보고 싶다는 바램을 담고 있습니다. 다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싶은데, 메타버스라는 주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요즘에 TV에서 많이 사용하는 부캐나 세계관과 관련해서 현실에서, 일상에서, 진지한 영역에서 다중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메타버스를 이야기할 때도 세계관과 다중 정체성이 많이 언급되는데, 소비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진짜 자기의 커리어나 학문의 영역이나 직업의 영역에서 이렇게 실험해볼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가상공간을 구축하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여러 작업을 시작하셨다고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학문적인 정의와 상관없이 본인이 정의하는 ‘가상’은 무엇인가요? 가상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일상화되었고 예를 들어 카카오 뱅크는 완전히 디지털화된 은행이지만 아무도 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카오 뱅크를 규정을 해야만 할 때 버추얼 뱅크로 정의하죠. 작가님이 정의하는 가상은 무엇인가요?

우선 저는 카카오 뱅크가 가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비유를 하나 들자면, 테마파크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테마파크 내에서의 가상 개념이 제가 생각하는 가상 개념과 가장 가까운 듯합니다. 디즈니랜드를 방문한다고 할 때, 티켓을 6개월 전에 예약할 때는 현실 공간에 있죠. 이때는 기대감을 가지고 내가 있는 현실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시점입니다. 방문 당일이 돼서 테마파크 문 앞에 섰을 때 그 문을 들어설 때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키느냐, 여기부터 가상이라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듯해요. 공급자적인 측면에서는 디즈니가 거기서 어떤 장치를 해놓느냐의 문제로, 이 문을 지나가면서 이야기 속 세계의 한 일원이 되게 만드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죠.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우선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의 입장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그 문을 지나서도 아이를 챙기고 현실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정말 몰입을 할 수 있죠. 여러 가지 아이템들로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고 현실의 자신을 잊어버려요. 같이 간 일행이나 그 공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도 그런 방식으로 소통하고 상호작용을 합니다. 또 디즈니의 캐릭터가 다가와 악수를 하고 안아줄 때, 그런 행동 자체가 이야기 속에서 서로를 알아봐 주고 인식해주는 행위죠. 이러한 것들을 디지털이나 온라인 공간에서는 게임 쪽에서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도 현실의 일을 처리하면서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로 게임 안에서 들어가서 감정도 분출하고 내가 실패했을 때는 진짜로 좌절하고, 성공했을 때는 정말 기뻐하는, 나의 자아와 게임의 캐릭터나 아바타를 완전히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때 게임 속에서 다른 아바타를 만난다면 그들은 그와 같은 층위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인식하고 상호작용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환경이 물리적이냐 디지털이냐,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의 구분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서 어떤 그라운드 룰에 동의하고 행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VR은 조금 별개인 것 같은데요, 조금 다른 차원인 것이 헤드셋을 쓰고 마주치는 현실은 현실이 아니라고 믿지 않을 수 없는 강도의 강렬함을 갖기 때문입니다. VR 환경에서 낭떠러지에 섰을 때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리다가 주저앉고 소리를 지르는 경험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할 수 없는 단계이기 때문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완벽한 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님은 가상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씀해주셨습니다. 첫 번째 가상 개념은 상상력을 이용하여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방식의 가상으로의 진입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도 가능합니다. 그것을 테마파크와 구별해서 생각해보자면 테마파크의 경우 내가 펼치는 상상력에 나의 신체를 움직여서 얻어내는 감각이나 체험이 더해지는 것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책이나 영화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미디어나 디바이스를 거치는 것과 거치치 않는 것의 차이 때문입니다. 스크린을 거쳤을 때 주변의 것들이 계속 인식되는 상황과 완벽하게 나를 둘러싼 360도의 꽉 찬 환경에 놓이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 측면에서 테마파크와 VR 콘텐츠는 완벽하게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완전히 둘러싸인 환경에서는 현재 나의 신체가 1대 1 스케일로 작용하고 나의 오감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상태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디즈니랜드는 기술적 요소를 뒤로 철저하게 숨기는데요, 기술 자체도 디지털적이고 수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거기의 캐스트라는 사람들에게 전달해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 서비스는 결국 휴먼 터치라는 영역으로 넘어가서 사람에게 말을 걸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호응해줌으로써 가상적인 측면을 극대화합니다. 만약 이것들이 디스플레이 안에서 목소리가 생성되어 작동하는 방식이라면 몰입도가 떨어질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이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저는 오프라인, 물리적 영역에서 가상에 접근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메타버스 개념에서도 물리적 영역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를 치장하는 것과 현실 세계에서 종이 인형 놀이나 바비인형 놀이를 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종이 인형을 오리는 작업은 단순 준비작업이 아닌 촉각을 이용하여 놀이에 들어가는, 거기에서부터 놀이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비인형 옷 갈아입히기에도 손가락을 이용하는 촉각적인 요소가 개입합니다. 하지만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를 꾸미는 것에는 그런 촉각적 신체성 혹은 휴먼 터치가 탈락해있지 않은가요? 현실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가상세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성은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혹은 그런 오감 중 일부가 탈락하는 감각 경험을 인지적 몰입만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은 가능하다는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탈락하였다고 표현한 부분들은 실제로 현재로서는 목표의 영역입니다. 현재 우리가 가진 예산, 시간 그리고 기술력으로는 한계가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공급자로서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죠. 반면에 사용자는 자신의 상태, 관심도나 충성도에 따라 몰입에 들어갈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게임 플랫폼에서 그래픽적인 요소를 놓고 봤을 때 로블록스 같은 게임이 메타버스에서 많이 언급되는데, 로블록스는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그래픽이 굉장히 옛날 그래픽이어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는데 아이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십 년, 이십 년 전에도 그래픽적이나 경험적인 것이 떨어져도 몰입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몰입했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신체적인 감각을 확장해 나가는 것은 부가적인 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품질의 차이이지만 결국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기 생각을 바꿔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종이접기로 만든 생물을 진짜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몰입해서 놀기도 합니다. 심지어 사실적인 그림이 아닌, 자기가 그린 그림에도 충분히 생명력을 부여해서 가지고 놀죠. 여러 종류 게임에 들어갈 때마다 아바타를 만드는데, 어떤 곳은 사람과 구분 못 할 정도의 사실적인 아바타 시스템이 있어서 게임은 안 하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꾸미면서 노는가 하면, 닌텐도 같은 오래된 아바타 시스템의 경우에는 만화적이고 단순한 그래픽을 가지고 있지만, 캐리커처처럼 특징을 잡아내서 다 재현해서 놀죠.

 

<아바타 제작 서비스 지니스(Genies)를 통해 생성한 신기헌의 아바타>  ⓒ신기헌 제공

 

 

본인은 메타버스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는가요?

 

저는 현실 공간, 물리적 세계의 비중을 높게 두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메타버스는 현실 세계에서 가상세계로 빈번하게 넘나드는 경험적인 것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그리고 자신을 기준 삼아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 그리고 사람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이런 것들을 메타버스 영역에 포함을 시킵니다. 과거에는 이런 것들을 트랜스미디어라고 많이 이야기했는데, 트랜스미디어는 매체를 넘나들면서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조립되어 하나의 경험으로 전달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의 창작 기법으로서 마케팅에서 특히 많이 활용됐었는데 저는 이런 것들도 메타버스의 영역으로 포함을 시키는 쪽입니다. 지금 메타버스라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새로운 매체가 몇 가지 더해졌을 뿐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메타버스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현재 이야기되는 메타버스가 메타버스가 아니라고 정의하는 많은 사람이 있는데, 꽤 권위 있는 사람들도 우리가 하나하나 말하는 메타버스를 마이크로버스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저도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또 누군가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미디어버스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저도 이 관점과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로블록스라는 매체가 생기고, 여러 개의 도구, 매체, 디바이스를 사용하던 것이 그 안에서 하나로 합쳐지고,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죠. 현실에서 멀티태스킹 하는 것처럼 로블록스 안에서 소통도 하고, 놀이도 하고, 중요한 논의도 하고, 자기표현도 하고, 자아를 찾아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 행위가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메타버스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완벽하게 다음 단계로 갔을 때 궁극적인 메타버스가 되죠. 그 중간 단계를 오픈 메타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오픈은 오픈 소스의 오픈이라는 개념으로, 지금은 각각이 하나의 서비스이거나 파편화되어 스토어에서 개별적으로 판매되는 콘텐츠에 불과한데 이것들이 통합되는 환경을 말합니다. 현재는 기술적으로도 각각의 운영 주체가 각각의 서버나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에게 스트리밍하거나 접속할 수 있게 권한을 설정하고 계정을 만들고 각각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나중에는 포트나이트에서 얻은 아이템을 로블록스에서도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거기서 사용하면 잔고가 반대편에서도 사라져있는 그런 구조가 형성되겠죠. 현재의 마이크로버스라는 것들이 하나하나 연결되고 통합되었을 때 오픈 메타버스라는 개념에서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그 안에서 벌어들인 재화나 혹은 자격이나 권위나 모든 것들이 현실 세계로 넘어올 수 있다고 봅니다. 현실 세계의 효용가치로 전환될 수 있고 반대로 현실에서의 권위를 그대로 가져와서 가상세계에서의 경험을 시작할 수 있죠. 둘 사이의 순환구조가 일어나고, 그 안에서 사회가 형성되고 경제가 형성되고 거버넌스, 지배구조가 생겨날 것입니다. 복잡도가 굉장히 높아질 것인데, 복잡도가 굉장히 높아짐에 따라 결국 특정 운영 주체가 운영을 감당할 수 없는 하나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런 모든 권한이나 역할들이 다시 그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분배가 되어야지만 운영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레디플레이어 원>처럼 이런 사회를 그려놓은 많은 영화가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은 단순히 헤드셋을 쓰고 몰입감 있는 세계로 넘어간다는 측면보다는 그 안에서 그려지는 사회상, 정치적인 행위들, 갈등, 대립들처럼, 실제로 메타버스라는 단계로 갔을 때 필연적으로 있을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현실에서의 자아와 가상세계에서의 자아가 동일한 중요도를 갖게 되겠죠.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의 상하 관계가 수평적인 관계가 되는 그 정도가 되었을 때 이것을 궁극적인 메타버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의 차별 요소는 단일 서비스나 콘텐츠와 비교할 수 있는 층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총체적인 삶과 비교할 수 있는 층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죠. 현실 삶의 중요도에 가상세계 하나가 더 생긴 것이 메타버스입니다. 그 속에서 정체성 자체도 분리될 수 있고, 이 속에서 살아갈까 여기서 살아가면서 쌓아갈까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살아갈까 하는 대등한 차원이 되고 중요도도 비슷해질 것입니다.

 

 

현재의 메타버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에 불과하지 않은가요? 로블록스에서의 공연이나 구찌, 나이키 같은 브랜드들의 메타버스에서의 상품 판매가 가상세계에서의 독특한 경제 구조를 표현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현실 세계의 자본주의 논리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메타버스 내에서의, 오픈 메타버스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다수의 사람이 참여해서 그 이익을 공동분배하고 기여도에 따라 가져가고, 이것은 블록체인 기술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일 텐데, 그런 것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 보여서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날카로운 지적이고 현재는 그게 맞다고 봅니다. 옳다가 아니라 그 상황이 맞다고 봐요. 철저하게 상업화된 목적에 맞는 일들만 벌어지고 있고, 기업들은 결국엔 하나의 새로운 매체, 마케팅 채널로 보고 있죠. 이것은 오프라인에서의 전통적인 산업이 온라인에서 판매 채널을 늘리는 것, 마케팅 채널 늘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아까 블록체인 얘기해주셔서 반가웠는데, 완전 다른 진영들이 있어요. 가상세계로 이주하자, 온라인 세상에서 연결되어 일해보자, 그다음에 협의체로서 분산된 형태의 권력에 대해서도 기여한 만큼 받고 보상에 대해서도 기여한 만큼을 측정해서 제공하자는 마이크로 페이먼트가 가능해지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했죠. 혹은 어떤 사람이 십 원어치의 기여를 했는데 그 십 원을 추적하기 위한 비용이 천원이 들어서 지속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이런 일들이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가능해졌습니다. 기업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새로운 매체로서 접근하는 방법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자신들이 꿈꿔왔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접점, 이렇게 양방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만나는 다층적인 지점들 지점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간사례들이 나올 것 같은데 그 안에는 분명히 블록체인 기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스마트 컨트랙트라고 하는 기술들을 토대로 해서, 이 안에서 기여한 사람들이 가진 지분을 토대로 혹은 어떤 의사 결정권을 토대로 해서 실제로 그 거버넌스가 작동하는 거죠.

 

 

다음 질문은 가상세계에서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가상세계에서의 버추얼 빙, 버추얼 인플루언서 등 여러 가지 용어를 쓰셨던데 이들을 이해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98년에 사이버 가수 아담의 선풍적인 인기를 보았고,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버추얼 미라는 개념은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바타를 꾸밀 때 나를 투영하는 방식이 있고 나와 완전히 반대되게 꾸미는 방식이 있다고 다른 강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자아를 갖는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버추얼 미라는 개념 이전에 세컨드 바디나 디지털 미 등 여러 가지 표현을 썼었어요. 정형화된 표현은 아니라고 우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아바타라는 통칭을 추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까 제가 플레이어와 플레이어블 캐릭터 두 가지를 말씀드렸어요. 플레이어블 캐릭터라는 것은 특정 룰 안에서 특정 행동으로 특정 목적을 달성한다는 전제가 있는 반면, 그런 목적 자체가 주어지지 않은 환경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바타라는 개념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이것은 보이는 것들이 더 중심이 되는 거죠. 게임 캐릭터는 외형적인 것들이 나에게 강제로 주어지는 경우가 있고 스토리나 세계관 안에서 뭔가 밸런싱 되어 있는 그런 속성들이 있는데, 목적 없는 세계 안에 나를 대신하는 디지털의 뭔가를 투영한다고 했을 때는 표현적인 측면이 훨씬 더 강해지는 거죠. 어떤 사람은 굉장히 큰 캐릭터를 가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개미만한 캐릭터를 가져도 이것들이 게임성과 게임 환경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표현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아바타에서는 꾸미기라는 요소가 더 부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를 닮은 것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재미 요소가 있고, 혹은 그것과 관계없이 내가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보겠다는, 그리고 그게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를 창조하는 행위로서 사람들이 즐기는 것 같아요. 이것은 결국 다중 환경이라는 전제가 있고 그것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고 평가해주고 같이 즐겨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표현의 영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가 클럽 하우스의 예를 들 수 있겠는데요, 클럽 하우스에는 청중이 있고 말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말하는 사람과 대화방을 개설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정확한 목적성을 가져요. 내가 이런 방을 개설해서 어떤 사람들을 모아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게 함으로써 어떤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들이 있죠. 이 경우에는 그 계정을 만들 때 자신의 현실에서 쌓아온 것들을 최대한 담으려는 노력이 보여요. 클럽 하우스의 프로필이 매우 제약이 많은데, 트위터도 마찬가지인데,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너무 한계가 있어요. 거기에 자기가 현실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모든 수단을 써서 구겨 넣는 거죠. 그 하나의 시스템에 맞춰서. 이런 것들이 가상세계, 삼차원의 아바타 기반 세계에 갔을 때, 또 만약에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이, 그리고 거기서 플레이어블 캐릭터만이 아니라 그 상위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이 아바타를 통해서 현실 세계의 플레이어인 나를 알아봐 줘야 하는 목적을 가질 때는 이 아바타를 꾸밀 때 최대한 나를 닮게,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모든 속성을 이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게 만들려는 목적성이 있는 거고요. 그 이외의 경우에는 그냥 내가 지금 마음에 드는 대로 최근에 나에게 영감을 준 무언가를 보고 똑같이 따라 하고 싶은 것들,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영역으로 완벽하게 구분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정체성이라는 것이 한쪽에서는 크게 작동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크게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요즘 NFT를 이용해서 예술작품을 거래하는데 저는 이것이 인터넷이 구축되고 그것의 예술적 실험 가치가 부각되던 시기에 추구되었던 무한대의 복제, 배포, 공유, 자유로운 접근 가능성과 배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작품에 꼬리표를 붙여서 유일성을 부여하고 그 유일성에 가치를 매겨서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메타버스를 인터넷의 확장판으로 이해한다면 NFT를 이용하는 것은 인터넷 정신과 반대되는 것은 아닌가요?

 

질문을 쪼개서 생각해보면서 답을 하겠습니다. 유일성을 부여한다는 측면은 대중들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특히나 예술품 거래 쪽에서 많이 활성화됐었죠. 저는 그 효용가치가 매우 낮다고 봐요. 현실적으로도 크게 의미가 없고 행위 자체도 크게 의미가 없어요. 한 가지 효용성이 있다고 한다면 중개자를 건너뛸 수 있다는 점에서는 효용가치가 있어요. 근데 지금 보이는 많은 사례는 제도권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소더비나 크리스티와 같은 미술품 경매 기업이 이것들을 계속 이슈화하고 700억에 판매되는 레코드를 기록하고 이런 측면에서는 다시 중개자가 굉장히 부각이 됩니다. 또 NFT라는 디지털 세계의 자산을 거래하는 플랫폼들이 있어요. 오픈씨나 슈퍼레어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도 중개 플랫폼이잖아요. 중개 플랫폼이 갖는 권한이 생각보다 높아요. NFT를 가지고 사람들이 기존의 유통망, 유통상의 중개자를 건너뛰고 직거래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으로 권한이 이양되는 상황까지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들은 수수료 정책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고요. 그런 오픈 플랫폼 중에서도 어떤 것들은 본인들이 스스로 이런 권한을 전체 사용자들에게 혹은 커뮤니티에, 지분을 가진 소수에게 이양하고 우리는 탈중앙화 하겠다는 정책을 가진 곳도 있어요. 유통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런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유일성을 상징한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보고, 지금의 중개, 유통, 거래하는 방식에서 이러한 흐름으로 발전하면 일정 부분 의미가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공유, 무한대 복제 배포 같은 웹의 정신들을 이야기했을 때 이게 사실 극단적으로 가면 다크웹까지 가는 거죠. 이건 국가의 감시나 사회의 법망까지도 거부하고 우리는 이 안에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겠다는 것인데 일상적으로 봤을 때 다크웹을 사람들이 거부하죠. 옳지 않다고 치부하죠. 자유나 자유로운 접근이라는 것이 어느 수준이냐 문제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내 개인 데이터를 다 주면서도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도 많은 자유로움을 느끼죠.

 

블록체인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NFT라고 했을 때 이더리움이라는 블록체인이 많이 사용돼요. 퍼블릭 블록체인이에요. 이 안에는 많은 것들이 다 오픈되어 있고 누군가가 이더리움이라는 네트워크에 기여하고 싶으면 기여할 수 있고 채굴이라는 방식으로 기여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그 거버넌스에 참여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데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실제 코드를 개발해서 거기에 기여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 가지에요. 혹은 크리에이티브 생태계에서는 콘텐츠를 만들고 서비스를 만들고 그 생태계를 확장하겠다. 이런 것들에서는 충분히 오픈, 퍼블릭이라는 것들이 이미 잘 작동하고 있고 심지어 금융이라는 것도 들어와서 사람들이 흔히 마이닝을 해서 인센티브를 얻어간다고 하는 측면 이외에 더 많은 수익의 기회, 투자의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생기는 거죠. 그래서 인터넷이 주는 자유와 가능성에 대해서는 오히려 해쳐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있고요, NFT를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게 무한대로 가치를 가져버리면 사실 현실 세계의 경제가 이쪽으로 빨려 들어왔을 때, 거품이 끼고 불필요한 가치가 평가되는 것들의 문제는 있어요. 저는 그 문제는 크게 지적을 하고 싶고, 그런 가치들이 오히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려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허가 없이 채택할 수 있다는 그런 개방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크립토 펑크라는 NFT가 매우 많은 돈을, 시가 총액을 가지고 있어요. 이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은 이 NFT를 활용해서 누구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에요. 실제로 크립토 펑크는 얼굴 중심으로 있는 NFT고 이 얼굴 하나에 몇십억씩 해요. 24*24 픽셀 도트 이미지가 그래요, 그러면 누군가는 얼굴만 있으니까 재미가 없잖아 하면서 크립토 펑크 바디라는 것을 만들어요. 블록체인상에서 크립토 펑크 얼굴 NFT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가 만든 몸을 그냥 전송을 해버려요. 어느 순간 누가 뭘 보냈는데 몸인 거죠. 얼굴과 몸을 합쳐봤는데 재미있어. 이런 식으로 몸을 만든 사람은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노출하면서 자기가 만든 새로운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는 거죠. 이전에는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지금은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다른 차원의 개방성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오픈 소스 다음 단계인 것 같아요. 이것을 웹쓰리 경험이라고 하는데, 웹쓰리가 가지는 개방성은 기존의 인터넷 정신과는 다른 차원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NFT는 현재 그런 식으로 소비되고 있지 않죠. 99%는 소유권을 이전하는 징표로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작가가 실물은 주지 않고 사인한 종이만 주는 그 수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 NFT 기술을 이용하면 많은 프로세스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Larva Labs CryptoPunk>  ⓒ신기헌 제공

 

 

마지막으로 미디어 아트를 하고 싶다거나 자신의 작품에 기술적인 것을 이용하고 싶지만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에게 어떤 팁을 준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전반적으로 모든 기술을 초급 수준으로밖에 사용을 못 해요. 거의 프로그래밍을 못 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죠. 제가 문제를 정의하고, 만들고 싶은 목표를 정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쉽게는 협업이라는 방법이 있겠죠. 협업 이외에도 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사실 블록체인이나 NFT라는 기술이 가진 잠재성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어요. 이것은 사실 기술의 영역이 아닌데 기술을 이해함으로써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이 기술을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는 기술자들은 그런 상상을 하질 못해요. 그래서 제가 주로 하는 작업은 세상에 계속 생겨나는 미디어, 디바이스, 기술들이나 새로운 툴과 도구들을 빠르게 탐색해보고 가벼운 수준에서 그것들을 만져봤을 때 이걸로 할 수 있는 잠재성이 무엇인지를 빠르게 파악하고, 그중에서 제가 직접 해볼 수 있는 것들은 가볍게 실험해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조금 더 기술적으로 능숙하신 분들에게 한번 살펴봐 달라고 하면서 호기심을 끌면서 협업을 이끌어내는 거예요. 오히려 기술적으로 익숙하신 분들도 새로운 것을 볼 때 좀 낯설어하시는 경우도 많고, 어려워하시는 경우들도 있어요. 그럴 때 제가 먼저 공부를 해서 실제 다룰 줄은 모르지만, 그 길을 적극적으로 안내해드려요. 이거 보시고 이런 것들 사용하면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면 그분들은 그 하나의 팀만으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고 이런 것도 일종의 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꼭 작가와 뭐 프로그래머와 엔지니어가 일대일로 서서 반씩 공유하면서 협업했다는 차원을 떠나서도 항시 일상적으로 사람들과 같이 관심사를 공유하고 같이 스터디하고 이런 활용 가능성을 보다가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실제적인 계획들을 세워서 실행으로 옮기는 거죠. 처음에 말씀드렸던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라는 정체성이라고 하면은 능동적으로 세상에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나 이 기술들을 가지고 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실험들, 새로운 시도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시간 반의 인터뷰 동안 매우, 자주, 진심으로 감탄을 했다. 신기헌 작가는 여러 가지 어려울 수 있는 개념과 주제들에 대해 명쾌하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통찰력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메타버스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와 이 세계가 현실 세계와 연동하여 가질 수 있는 진정한 역량에 대한 전망, NFT가 단순한 수익 창출 모델을 넘어 활용될 가능성 등등. 그의 답변에 귀 기울이면서 신기헌이라는 사람은 기술과 예술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기발한 실행을 통해 진정한 테크네를 구현하는 예술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나의 이 글을 통해 신기헌 작가는 자신을 ‘포스트 디지털 시대에 진정한 테크네를 구현하는 예술가’로 보는 시각 하나를 더 수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인터뷰가 메타버스, NFT 그리고 예술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 인터뷰이 신기헌

    신기헌은 공간, 아트, 디자인, 마케팅, IT 등 영역에서 크리에이티브와 테크놀로지가 하나로 융합되는 다양한 실험을 이어왔다. 국내외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LG OLED TV 동물의 숲 캠페인, 방콕 라인프렌즈 테마파크, 이마트 써니세일 캠페인 등을 제작하였고, 현재는 다수의 메타버스와 관련한 전략, 기획,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이메일

  • 인터뷰어 김선영

    김선영은 전북대학교 과학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예술 사회학에 대한 관심으로 예술학과에 진학해서 디지털 매체 철학을 공부했다. 디지털 아트, 디지털 문화, 디지털 시대의 인간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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