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문화재단

검색
전주문화재단 전주 예술계의 비평 문화와 현실 읽기 | 전체기사
전주문화재단 전주 예술계의 비평 문화와 현실 읽기 | 전체기사
웹진 «온전»

제목

전주 예술계의 비평 문화와 현실 읽기 비평
  • 2022-03-23 16:43
  • 조회 946
김정배(글마음조각가, 원광대학교 교수)
제4호 예술과 브랜딩 그리고 문화창조자로서의 팬_2022년 3월

본문 내용

 

2022년 《온전》은 전북 비평 문화 발전을 위한 코너를 운영합니다.

참신하고 자유로운 전주의 비평과 비평가를 발굴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몇 년 전 전주한옥마을을 거닐 때의 일이다. 오랫동안 공터로 비어있던 자리에 못 보던 한옥 한 채가 새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옥 형태에 맞게 기둥이 세워지고, 이내 작은 기중기에서는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서까래가 연신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지붕 위 처마 기둥을 밟고 서 있던 노인은 한참 뒤 기중기 기사를 향해, ‘막장 올려!’라고 소리친다. 순간의 묘한 떨림이 전해진다. 그 울림과 반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다시 공사장 주변을 빙빙 맴돌다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노인이 땅을 밟고 내려설 때까지 기다린다. 어느새 노인의 두 손에는 망치 대신 내가 건넨 캔 커피 하나가 들려있다.

 

대목장으로 보이는 노인에게 온갖 친한 척을 하며, 이물 없게 ‘막장’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다. 처음에는 짐짓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더니,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자 이내 노인은 경계하는 기색을 싹 지우고는 한옥의 마지막 서까래가 바로 막장이라고 일러준다. 땅바닥에 막대기로 한옥의 구조까지 그려주며 친절함을 더한다. 노인이 언급한 막장과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막장의 의미에서 많은 차이가 발생한다. 보통 막장하면 갱도의 막다른 곳 혹은 허드레로 만든 된장 정도로 인식한다. 또는, 인생의 마지막 장에 막다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뜻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노인은 선자의 마지막 서까래를 ‘막장’이라는 이름으로 호명한다. 막장은 말 그대로 한옥을 완성하는 마침표인 셈이다.

 

나중에 여러 건축 자료를 통해 안 사실이지만, 서까래는 목조 건축물에서 지붕을 받쳐주는 갈비뼈 모양의 구조물로 규정된다. 구조물의 마룻대를 기준으로 지붕을 이루는 가로대를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한옥마을에서 마주한 노인이 말한 서까래를 지시한다. 그중 막장은 마룻대에서 도리 또는 보에 걸쳐 자른 뒤 그 위에 선자를 얹는데, 선자 서까래의 마지막 부분이 바로 막장이 된다.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쓰임을 구분하고 나니, 막장이라는 단어가 이내 인간 창조 혹은 진화의 갈비뼈에 대한 상상으로도 이어진다. 인류 역사나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갈빗대의 비유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하는데, 한 인간의 완성 혹은 문화예술의 방점이 되는 것도 건축에서 말하는 막장의 뜻과 맞닿아 있겠다는 상상도 하게 된다.

 

전주시 한옥마을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제공

 

전주 예술계의 비평 문화와 현실을 숙고할 때도 이 막장의 개념은 상당 부분 유효한 듯 보인다. 우선 막장의 쓰임은 상황에 따라 분명 양가적인 의미를 형성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전주 예술계의 문화 현실을 되짚어보면 사실 어두운 면이 먼저 생각난다. 범박한 예로 서울에 거주하는 한 문화기획자가 전주에 내려와서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전주에는 많은 예술가가 있는 것 같지만, 콕 집어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는 심정을 솔직담백하게 전한 바 있다. 물론 그 말의 진의는 전주가 오랫동안 갈고 닦아온 문화예술 전반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기에 기분이 상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대화 속에는 지금까지 전주 예술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왔는지, 아울러 어떤 목표를 가지고 흘러가고 있는지, 또한 무엇을 목적으로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자성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사실 전주 예술계의 비평 문화하면 글줄깨나 읽고 쓰는 나부터도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다. 전주시의 시정방침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전주는 ‘품격있는 문화도시’를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슬로건 속에는 전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꽃심과 그 속에 있는 대동·풍류·올곧음·창신과 연결된다. 하지만 비평 문화를 필두로 한 품격과 문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꽃심의 정신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면 나부터가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이는 전주 예술계의 비평 문화에 대한 부재로도 해석된다. 전주한옥마을과 팔복예술공장, 선미촌 그리고 새롭게 개관한 여행자도서관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문화예술 활동을 비평 문화에 엮기에는 왠지 모르게 궁색하기만 하다. 나아가 전주세계소리축제나 전주국제영화제, 전주문화재야행, 전주한지문화축제, 전주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 등의 프로그램에서도 현상을 진단하는 비평 문화보다는 오로지 창작과 단순한 소비가 오가는 문화 흐름이 주를 이룬다.

 

전주시 온고지원단 문화기획자 세미나  Ⓒ전주시 예술인복지팀 제공

 

그렇다면 전주 예술계의 건전한 비평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견지되어야 할까. 전주는 품격있는 문화도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깊은 역사와 풍부한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전주의 격을 한 단계 높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해 가장 한국적인 세계도시로 전주의 위상을 다져 시민 모두가 품격 있는 삶을 누리게 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꽃심이 상징하는 의미는 잘 도드라지지만, 비평 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무언가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 허전함은 이내 ‘끼리끼리 문화’나 ‘선착순 문화’로 이어지는 빌미를 제공한다. 실제로 2021년 전주시에서 조사한 <전주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있는 자료에 따르면, 예술인 717명 중 47.6%가 전주에서 예술가로 활동할 때 지연·학연·혈연 등의 인맥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대답한다. 여기에 더해 37.7%는 ‘약간 영향을 미친다’라고 응답하여, 전체 평균 85.3%가 전주의 끼리끼리 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목적이 없고 방향성이 상실된 문화예술지원 사업으로 다양하게 파생되면서, 종국에는 예술가를 맹목적 경쟁이라는 문화 속에 줄을 세우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 )의 『사피엔스』에 따르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호모 사피엔스가 현재까지 살아남게 된 이유에 대해 하라리는 대규모의 협력과 네트워크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인지 혁명’이다. 직접 보거나 만지지 못하는 허구의 대상을 집단으로 상상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인지 혁명은 허구의 개념이 강화되어 나타난다. 허구의 개념에 대한 공유는 수천수만의 호모 사피엔스가 군집을 이루고 협동하며, 서로에 관해 건전한 비평의 삶을 가능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모든 제도는 궁극적으로 허구, 즉 무언가에 대한 다양한 비평(뒷말과 허구)의 노력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우리 종의 가장 독특한 특징’으로 규정된다.

 

전주한옥마을 버스킹  Ⓒ문화통신사협동조합 제공

 

진화론의 핵심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로 규정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는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였다고 애써 고백한다. 교류와 협력이 기반이 된 다정함은 살아남은 자들의 비평 정신을 뛰어넘어 새로운 리좀(Rhyzome) 문화가 갖는 삶의 다양성을 예측하게 한다. 기존의 수직적인 문화체계를 제고하고, 시대에 맞는 수평적 사고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끼리끼리의 닫힌 문화와 줄 세우기식의 경쟁방식 보다는 집단지성으로 하나가 되는 문화현상을 시대가 요구한다.

 

이제 결론 지어 말해야겠다. 전주가 새롭게 문화예술도시로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 다정한 비평 문화로의 진화가 요구된다. 나는 그것을 네트워크와 협력 그리고 리좀을 통한 ‘막장비평’이라고 부르고 싶다. 전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는 늘 새로운 판을 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것을 향유하고 즐기는 일반 시민은 문화예술의 최전선에서 전통적인 권력비평이나 주례비평 혹은 인정비평이나 버블비평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막장비평으로의 정신 무장이 필요하다. 스스로가 전주 문화예술의 최종 평론가가 되어, 저마다가 지닌 마지막 서까래를 통해 전주라는 문화의 둥지를 트는 막장의 힘이 절실하다. 그것이 곧 전주의 가치이자 정신이며, 독특한 법고창신의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 필자 김정배

    김정배는 글마음조각가라는 별칭으로 시인, 문학평론가, ‘오른손잡이지만 왼손 그림’ 작가로 활동 중이다. Paper Academy 글마음조각학교 대표, 글마음조각가의 한 뼘 미술관 ‘월간 그리움’ 운영자, 인문밴드레이(블랙)와 인‘트로트 인문학 ‘혜니와 남매들’의 프로젝트 멤버이기도 하다. 현재 원광대학교 융합교양대학의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페르케스트와 포트폴리오 독립생활자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다. 2020년 제1회 백인청춘예술대상을 수상했으며, ‘가장 무명한 예술가와 작독자의 삶’을 지향한다. 비평집 『라그랑주 포인트에서의 시 읽기』, 시평집 『나는 시를 모른다』, 핑거포토포엠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하루』, 『사진이라는 문장』, 왼손 그림 시화집 『이별 뒤의 외출』 등이 있으며, 그린 책으로는 시그림 아트북 『이상형과 이상향』, 그림책 『엄마의 셔츠』가 있다.

    [블로그] blog.naver.com/grigo7
    [유튜브] youtube.com/c/글마음조각가
    [인스타그램] @jab_kim_horange_196 이메일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top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