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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예술하기 에세이
  • 2022-06-03 13:04
  • 조회 832
박규현(창작극회 대표)
제5호 2022 문화예술정책_2022년 6월

본문 내용

 

예술의 개념

“문화예술”이란 문학, 미술(응용미술을 포함한다),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및 만화를 말한다.

-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 1항 -

 

예술인의 정의

“예술인”이란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창작, 실연(實演),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 예술인복지법 제2조2항 -

 

 

 

결핍과 불만

 

거개의 현장 예술인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적 상황이다. 장르와 예술가 개별 간의 입장이나 처한 상황을 고려해도 큰 이견이나 차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지자체나 중앙정부의 예술계에 대한 제도적 관심과 정책적 시행에 대한 측면에서 감사할 따름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장과 행정의 간극은 생각보다 멀리 비켜서 있다. 아마도 이 간극의 멀고 가까운 정도에 따라 예술생태계의 활성도는 정비례할 것이다.

 

먼저, 결핍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사적-공적, 개별-집단 형태와 양식을 아울러서 성사된 만남에서 예술가들은 하나같이 ‘모자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관(람)객이 부족하고 제작비가 형편없으며 아티스트에게 돌아갈 수익이 터무니없이 ‘모자라다’였다. 이들 요소 중 단연코 마침표를 찍은 것은 ‘예술에 대한 관심’이었다. 당연히 지원정책에 대한 부족분을 역설하는 예술가도 있었지만, 오히려 정책과 지원은 후순위였다. 그렇다면 ‘왜 일반대중이 예술에 관심 없나?’ (답을 알면 진작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지만)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솔루션이 있었지만, 다음에 좀 더 폭 넓고 세밀하게 다룰 기회가 있으면 그때 논의하기를 바란다.

 

결핍현상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응이 대동소이라면 불만에 대한 의견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지원규모-분배방식-정책수립 구조-소통부재-예술복지-청년(노인)기회 등 예술전방위에 걸친 수많은 의견(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예술생태계에 거시적 관점부터 개별예술가의 민원성 불만제기까지 무수히 많은 제안과 토로가 넘쳤지만 이들의 말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예술계의 문제는 예술가가 해결하자” 즉, 예술계 당사자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얘기였다. 농업정책은 농민이, 교육정책은 학생이, 노동정책은 노동자가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본인들의 사정을 전달하고 필요한 사안을 조율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몇몇 예술가를 제외하고 행정-제도-정책에 직접 참여-제안한 인원은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다수의 예술가가 참여하지 않은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이해한다. 단, 과거의 결핍과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상대적 박탈감, 무력감, 소외감 등 우리 사회가 예술을 바라보는 현실적 관점에 대해 깨단했다. 일반대중의 무관심과 제도정책의 부족함에 대해 감정적 서운함이나 불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의 권리는 스스로 획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겼을 뿐이다. 예술가 당사자운동을 펼칠 때가 온 것이다.

 


예술은 미래를 장전한 무기다” 영화 <노벰버> 중에서  Ⓒ박규현 제공

 

 

불안과 인정

 

연극작업을 해온지도 이제 20년이 넘는다. 그때도 연극이 좋았고 지금도 연극이 재밌다. 줄곧 연극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변하지 않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연극을 시작한 루키시절이나 20년이 지난 지금이나 끊임없이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려 왔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가 개인의 예술을 위한 생계를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좀 비인간적이지 않은가? 개인예술작업이라고는 하나 국가가 정의한 기초예술에 몸 담고 20년을 성실하게 연극예술에 매진해온 결과라기엔 좀 서글프다. 게다가 남은 예술활동 기간을 예측해보면 얼추 20년 정도는 될 거 같은데, 20년을 또 돈에 시달려야 한다는게 막막하다. 예술인 복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궁금하다. 참고로 지역에도 예술인복지팀과 예술인복지센터가 있지만 그 활동과 기능은 아직 미비하다. 점차 나아질것으로 기대하는 동시에 제안을 하자면,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광역단체 단위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사가 설립되어서 기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동네마다 모습이 다르고 현장마다 사정이 다르다.

 


문화다양성은 풍요롭고 변화무쌍한 세계를 창조하고, 선택의 범위를 늘려주며, 인간의 능력과 가치를 증대시킨다. 그러므로 문화다양성은 공동체, 민족,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원천이다

-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유네스코, 2005) 전문 중에서 -

 

 

인정투쟁

계약관계에 따른 위계(位階)가 존재하긴 하지만 동등한 인간으로 승인받고자 하는 행위

 


인정투쟁 ; 예술가 편”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2019 두산아트센터 공연)  ​박규현 제공

 

김영하 작가가 어느 TV쇼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해보면 

 

독일에서 한국문학작가 낭독회가 열렸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문학작품의 낭독회를 보기위해 행사장을 꽉채운 독일 시민들을 보고 놀랐다. 이유인즉슨 황금시간대의 TV프로그램이 지루하고 따분한 다큐, 뉴스 등이 방송된다. 차라리 한국작가의 낭독회가 더 재밌다.

 

뭐 대략 이런 내용이다. 문화강국 유럽은 청소년에게 모든 전시장-뮤지엄-공공 공연장에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지원한다고 한다. 안팍으로(저녁에 다큐/ 관람무료) 시민들을 못 살게 구는(?) 모양새이다. 헛웃음이 나면서도 부럽기도 했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예술지원을 원하는게 아니다. 우리를 예술가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는 권리를 행사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수혜자가 아니다. 예술생태계를 복원하고 선순환구조로 탈바꿈시키기위해서 예술가 스스로도 각성하고 실천의 영역으로 기꺼이 몸을 옮길 준비가 되어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만들어준 기회이기도 하다.

 

전주예술계 전체를 대신하지도-대신할 수도 없는 입장임을 밝히며 다시금 예술계가 생명력있는 움직임으로 “예술가 당사자운동”을 실현하기를 바란다. 각자가 놓인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활발한 논의와 실천적 운동을 병행하다 보면 어딘가 쯤에서 만나서 같이 힘을 보탤 수도 있고 또 다시 각자의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나와 정반대에 의견일지라도 존중하고 이해노력할 수 있다. 다양성은 공동체의 생존과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핵심요소이다. 이것은 당연히 개인의 인권 및 자유를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나는 기꺼이 같이 걸을 준비가 되어 있다.

 


2016 권리장전 연극제 중에서  Ⓒ박규현 제공

  • 필자 박규현

    박규현은 연극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 밴드를 꿈꾸며, 동네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harock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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